제1장 ‘생각’이라는 병 -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무지하게 된다
뇌 속에 틀어박히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인간의 세 가지 기본 번뇌 - 분노, 탐욕, 어리석음
마음 관리 - 바르게 생각하기 훈련
생각 센서로 항상 마음의 범죄를 점검한다
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마음이 충족된다
제 2장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법 - 짜증과 불안을 없애는 연습
1. 말하기
말하는 법의 기초는 자기 목소리 관찰에서부터
‘만(9)’이라는 번뇌 때문에 쓸데없는 대답을 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는 연습
사과할 때에는 구체적인 개선책을 말하라
자기를 위한 변명은 상대의 고통을 증가시킨다
성실한 변명은 상대의 고통을 위로한다
뇌가 착각하는 단기적인 이해와 장기적인 이해
욕을 하면 마음이 더러워진다
거짓말을 자꾸 하면 어리석어진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감사 병’은 마음을 비뚤어지게 한다
감사에도 강약 조절과 변화가 필요하다
2. 듣기
소리에 세뇌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해본다
세계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세계가 변한다
상대의 고통을 듣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다
비판 받을 때에는 상대방의 고통을 헤아리는 여유를 갖는다
소리에 즉시 반응하지 않는다
3. 보기
자극이 강한 영상은 번뇌를 키우기 쉽다
‘나는 괴로운데, 상대는 괴롭지 않다’는 오해
관찰 결과를 자아에게 일일이 피드백하지 않는다
반쯤 감은 부처의 눈을 흉내내 집중한다
자신의 표정을 항상 자각한다
4. 쓰기와 읽기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구가 고통을 부른다
번뇌는 구하면 구할수록 증가한다
익명 게시판은 잔인한 마음을 키운다
메일로 서로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는다
글을 쓰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5. 먹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뇌는 하고 싶어진다
만족 알기 훈련으로 자신의 적정량을 안다
생각하지 않는 식사법 전편 - 하나하나의 동작을 예민하게 느낀다
생각하지 않는 식사법 후편 - 혀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6. 버리기
잃어버리는 게 두렵다는 생각이 부담을 증가시킨다
무언가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무명(??’을 키운다
집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버리기 훈련
자아를 지나치게 키우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7. 접촉하기
집중이 잘 안 되면 접촉하고 있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가려우니까 긁는다’를 멈춘다
8. 기르기
당신을 위한 충고를 공격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싶은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다
동정과 걱정을 적절히 해야 한다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담담한 자비를 키운다
룰을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부정적인 것을 끌어들인다
부모의 꼭두각시가 아닌 독립적인 아이로 키운다
남녀 간에도 설득으로 사랑을 키운다
항복하는 사람이 열쇠를 쥔다
제 3장 대담 - 이케가야 유우지와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뇌과학자에게 듣는 ‘뇌와 마음의 신비로운 관계’
뇌 속의 연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서로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에게는 낭만적인 설레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간절했던 마음은 즐겁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눈앞의 연인을 두고서도 마음은 뇌 속의 연인 때문에 몸살을 앓습니다. 뇌 속의 연인이라고 해서 다른 이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걱정거리를 말합니다. 이러한 뇌 속의 연인으로 딴 생각을 하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마음이 답답한 미로를 헤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일본의 젊은 주지스님 코이케 류노스케는『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사고병(思考病) 즉 생각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인간은 불필요한 생각 때문에 ‘무지(無知)’한 딜레마에 빠진다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과식(過食)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볍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생각의 잡음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맙니다. 결국에는 번뇌에 때문에 『법구경』에 나오는 ‘사라목’(紗羅木)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즉, ‘조금도 마음을 조절 안하는 사람은 원수가 바라고 원하는 일을 자기에게 해버리고 자멸한다. 넝쿨풀에 휘감겨 고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기본 번뇌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바로 탐욕, 분노, 어리석음입니다. 탐욕은 어떤 것에 대해 좀 더 좀 더 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충동에너지입니다. 반면에 분노는 어떤 것에 대해 하고 싶지 않다, 라는 반발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은 앞서 말한 생각병처럼 눈앞의 것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자극을 구하려는 마음의 충동에너지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번뇌가 생각을 많이 하게 하여 뇌를 분주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병에게 생각은 악업(惡業)에 불과합니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일체유심조라고 하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마음이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각병이 문제시되는 것은 나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마음은 우리를 무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돌려야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휴뇌법’(休腦法)은 생각의 잡음으로 인한 무디어지는 감각을 치유해주고 있습니다. 휴뇌법은 뇌 그 자체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휴뇌법을 통해 스님은 마음속에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생각에 대한 깨달음이며 미음의 작용을 바꾸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쓸데없는 생각의 깨달음을 염력(念力)이라고 합니다. 염력이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알아차린 뒤에 마음의 작용을 바꾸는 힘을 ‘정력’(定力)이라고 합니다. 이 힘을 집중력이라고 하는데 의식을 조절해 하나의 장소에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감(五感)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면 어지러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 생각은 나중에 하고 먼저 오감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오감이란 눈, 코, 귀, 혀, 몸을 말하며 외부의 자극을 인식하는 통로입니다. 이러한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나(我)의 정체 즉 이것이 나다’라는 것입니다. 가령, 청각에 있어 ‘들린다’와 ‘듣는다’의 차이는 수동적 상태와 능동적 상태와 연결됩니다. 수동적 상태가 실념(失念:정념을 잃음)이라고 한다면 능동적 사태는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능동적 상태에서 우리는 생각의 잡음에 방해 받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에 비 오는 소리나 물 떨어지는 소리에 대한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오감을 살펴보면 촉각은 주목할 만했습니다. 우리는 ‘가려우니까 긁는다’를 스스럼없이 합니다. 가려운데 긁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것이 마음의 불안만 키우게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자는 가렵다, 라는 외적인 요인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긁는다는 것이 유쾌할 수 있으나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가렵다’ 라는 촉감에 집중하면서 가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삶의 명상에서 얻어지는 ‘휴뇌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휴뇌법은 삶의 거대한 행복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휴뇌법이 곧 명상이라는 굴레 때문에 오히려 현실 도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을 보면 일에 시달리면서 바쁘게 삽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을 느리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번뇌를 만듭니다. 그래서 저자는 명상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고 역설했습니다. 우리가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관찰을 하면서 ‘무명’(無明: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에 빠진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삶의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금 ‘생각병’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은 큰 울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