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年易老 學難成 (소년이노 학난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一寸光陰 不可輕 (일촌광음 불가경)
한 순간의 시간이라도 가벼이 해서는 아니된다.
未覺池塘 春草夢 (미각지당 춘초몽)
연못가의 봄 풀은 깨지도 못했는데,
階前梧葉 已秋聲 (계전오엽 이추성)
뜰(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을 알리는구나.
출전: 宋나라 학자 주희(朱熹) <<偶成>>
→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오동잎을 바라보면서, 이미 백발이 된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감탄을 문구로 적은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이 시간을 아끼고 학업에 전념할 것을 바라는 격려의 메세지이다.
<주희(朱熹)>(중국 남송 [南宋] 유학자) [朱熹, Chu Hsi, 주자]
주희는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유교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 대과(大科)에 급제했는데, 당시 그 시험에 급제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세였다. 그가 맡은 첫번째 관직(1151~58)은 푸젠 성 동안(同安)의 주부(主簿)였다. 이곳에서 조세·감찰 업무를 개혁하고 지방에 있는 서원의 서고(書庫)와 학칙을 개선했다. 또한 그때까지 없었던 엄격한 의례와 관혼상제의 규율을 제정하는 등 여러 개혁에 착수했다. 동안으로 부임하기 전에 이동(李侗)을 찾아갔는데, 그는 송 유학의 전통을 지킨 사상가로서 주희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1158년 주희는 그를 다시 방문했고, 1160년에는 수개월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11세기에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창하면서 거의 1,000년간에 걸쳐 실추되었던 유학의 학문적·사상적인 우위성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이동은 그 가운데 가장 유능한 후계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주희는 유교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