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작가의 운명. 하루 13-14시간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다보니 두번의 배를 찢는 수술을 했다.

천년의약속 현대 한국 문제점, 나아갈방향.
 촛불집회를 보고 4.19가 다시 일어났구나. 한명도 다치지 않고 이렇게
평화혁명을 일으킬수 있겠구나. 영감받아 소설말미에 천만명(평화상비군)의 시민이 한달에 천원씩 내는 시민단체를 100개 조직해서 정부, 국회, 재판부를 감시 감독하면 우리도 북유럽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같은 세계의 모범국가가 될 수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

*사진. tbs 뉴스공장 영상에서


- 탑스타뉴스 관련링크(7.2).
브라질 이민2세. 철인3종경기. 자신의 역경을 이겨낸 사람.

우리나라에도 이런검사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뇌물에, 봐주기수사에..


 kbs스페셜 2013-04-14(토) 방영분: http://www.kbs.co.kr/1tv/sisa/successage/vod/2143569_38545.html

출처: http://imbiz.tistory.com/140




출처: http://imbiz.tistory.com/140





 내가 즐겨보는 몇 개 안되는 TV프로. 토요일 저녁 7시 10분에 하는 KBS 글로벌성공시대.  왜 이런 걸 보냐는 얘기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런 것이 재미있다. 나를 돌아보게 해 주고 영감과 동기를 부여해 준다.

 특히 이번 다큐는 역경을 극복하고 자기성취를 이룬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여성으로써 부모님과 함께 어릴적에 갔던 브라질에서 너무나 큰 어려움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것이라서....  그의 오빠도 현재 변호사로 성장하여 이제는 어였한 주류사회로 자리잡은 그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 참조 >

     1. KBS 글로벌 성공시대 2013-04-14(토) 브라질의 강철 여검사 김윤정

     2. 먼저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신 분: 나는 경제다 (마이클잭슨형)



한국에서 쓰레기를 뒤지던 가난한 소년이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고초를 겪은 후에 이뤄낸 성과가 놀랍다.

학교를 하나도 다니지못했던 그는 미국에서 검정고시로 곧바로 대학입학시험 겪인 GED를 1년반만에 영어와 함께 공부하여 PASS하고 대학에 들어간 후 석사, 박사를 거쳐 대학교수를 역임하고 하원의원에 도전하여 4선의원인 공화당의 후보를 꺽고 미국의회에 입성한다.

 그리고 그후에는 상원의원에, 다시 상원 부의장으로 되는데 한국에는 소개가 많이 된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렺지 못한 것 같다.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의 이름이 보여, 찾아보니 토요일 아침에 KBS1에서 하는 '한국, 한국인' 이라는 프로그램에 그가 소개된 모양이다. 2013-01-12일자(한국, 한국인 다시보기 바로가기)  






 ■ 아래는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나온 그의 인터뷰 (2009-09-30일자)

       총 4개의 영상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는 교회를 독실히 다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그가 실제로 간증을 나누었다는 영상도 아주 많다.

그중에 하나..




  1.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13.02.12 18:24

    오랜만입니다. 요즘 예전 블로그하시던 분들
    참 만나기 어려운데.
    가끔 보는 프로그램 피플 인 사이드에서 인터뷰한 분이군요.
    저도 실상 처음듣는 이름인데 대단한 분이란 생각입니다.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3.02.13 10:41 신고

      블로그 활동을 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전에처럼 활발(?) 하게는 못하고 필요하면 한 번씩 올리고 발행은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 꾸준히 포스팅 올리시는 분들, 모두 화이팅 입니다. ^^

지난주 토요일에 KBS 글로벌성공시대에 나왔던 방찬영총장. ▶바로가기


1991년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카자흐스탄에 합류해서 대통령을 도와 교육혁명을 이룩한 그의 모습이 정말 빛나 보였다.





제66편
카자흐스탄 최고 대학의 총장, 방찬영 

방송 : 2012년 10월 20일 저녁 7시 10분 KBS 1TV
CP : 박복용
PD : 장강복
글, 구성 : 윤영수
진행 : 이현주 아나운서 / 나레이터 : 배창복 아나운서


교육을 통해 카자흐스탄에 미래를 선물한 사람! 
중앙아시아 최고의 상아탑 "키맵 대학교"의 설립자이며 총장인 방찬영 (77)
낡은 공산당 간부학교를 카자흐스탄을 이끌 인재 양성소로 탈바꿈 시킨
카자흐스탄 대학 교육의 아버지,
방찬영 총장의 도전과 성공을 만나러 간다.


"방찬영 총장은 카자흐스탄의 영웅입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카자흐스탄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나데즈나, 카자흐스탄 정부 법률 고문

"방찬영, 그는 카자흐스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스승입니다."
-갈리나, 카자흐스탄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아시아의 떠오르는 경제 강국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지금 적극적인 시장개방 정책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통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경제 수도 알마티에는 중앙아시아 최고의 대학, ‘키맵 대학교’가 있다. 키맵 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총장은 바로 한국인 방찬영 총장! 

러시아어가 공용어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일반 대학에 비해 10배 이상의 등록금을 받음에도 학생들은 대학교에 무한한 만족과 감사를 표한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세계 유수의 기업과 국제 금융기관은 키맵 대학교의 졸업생을 데려가기 위해 몰려든다. 또한 대통령이 나서서 ‘국립대학은 키맵을 보고 배우라’고 한다. 이처럼 키맵 대학교는 독보적이다. 이제 키맵 대학교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학교로 발돋움 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낡은 습관이 남아있는 카자흐스탄의 척박한 교육환경에서 중앙아시아 최고 대학을 만든 방찬영 총장. 그의 숭고한 교육철학과 열정을 오는 10월 20일(토) 저녁 7시 10분 <글로벌 성공시대> 제66회 “카자흐스탄 최고 대학의 총장, 방찬영”편에서 만날 수 있다.


1. 교육으로 이루어낸 카자흐스탄의 개혁
방찬영 총장은 1964년 연세대 상경대학을 졸업,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72년부터 UCLA와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종신 교수로서 활약하였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운명의 1989년, 그는 자신의 지식이 연구소가 아닌 그것이 필요한 실제 사회에서 쓰이길 바랐다. 그가 눈길을 돌린 곳은 개혁과 개방으로 혼란에 휩싸인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 그렇게 방찬영 총장은 따뜻한 켈리포니아의 연구소에서 개혁의 시린 칼바람이 부는 카자흐스탄으로 떠났고,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고문이 된다. 그는 대통령의 경제 특별 보좌관으로서 개혁 정책을 진행한다. 하지만, 70여년 묶은 공산주의의 관행은 그의 개혁정책을 더디게 하였다. 

그때 방찬영 총장은 카자흐스탄 교육의 역사를 바꾼 도전을 시도한다. 바로 카자흐스탄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의 요람, 대학교의 설립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전에 없던 새로운 학교를 만들겠다는 그의 피나는 노력 끝에 키맵 대학교는 카자흐스탄은 물론이고 중앙아시아를 선도하는 최고의 대학교이 되었고, 배출된 8000여명의 졸업생들은 카자흐스탄의 발전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은 평균 경제 성장률이 10%에 달하는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로 발돋움 하였다. 그렇게 그는 '교육으로 세상을 바꾼다.' 라는 키맵 대학교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2. 청렴성과 투명성, 최고의 대학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
키맵 대학교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방찬영 총장은 구소련 체제의 낡은 습관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이에 맞서는 그의 무기는 청렴성과 투명성이었다. 카자흐스탄 교육부는 수시로 낡은 잣대를 들이대며 키맵 대학교의 인허가를 번복하였고 검찰 총장은 아들이 부정행위로 정학을 받자 방찬영 총장에게 공갈과 협박을 일삼았다. 그러나 방찬영 총장은 그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투명성과 정직의 원칙을 지켰다. 예산, 운영, 징계위원회에 학생을 참여 시켰고 30%의 의결권을 주었다. 그는 학생이 주인인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단순히 투명성이라는 교육철학을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를 강요받던 학생들에게 자유와 책임이라는 민주주의 사상을 일깨워준 것이었다.

키맵 대학교는 20년이라는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수의 기관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최고 대학들끼리 학생과 학점을 공유하는 <볼로냐 프로세스>에 가입하였다. 이는 투명성과 청렴성, 방찬영 총장이 목숨처럼 지키려했던 교육 철학으로 이룩해낸 성과이다.

 


3. 꿈이 있는 한 청춘이다. 
공산당 간부학교를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 양성소로 환골탈태시킨 방찬영 총장. 그에겐 또 하나의 큰 꿈이 있다. 카자흐스탄 경제 개혁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언젠가 일어날 북한의 경제 개혁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 발전을 주도해 나갈 인재 양성을 위해 또 하나의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자신의 쓰임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방찬영 총장. 그는 영원한 청춘이다.

 

"실패만이 한 사람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고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합니다.
실패하면 좌절하지 말고 다시 한 발자국 걸어가고 
또 한 발자국 걸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위대한 여정입니다."
-방찬영 총장














28. 갈리나 수보로바 /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방총장님은 학생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대했습니다.

     사상을 강요당하는 공산당 간부학교가 있던 자리가

     지금은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펼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키맵이 이루어낸 기적입니다.



32. 방찬영 총장 / 키맵대학교

     총장이나 경영진이 주인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인입니다.

     우리 대학에서는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들어온 돈을 

     학교가 어떻게 지출하는지 그것이 교육 발전과 대학의 육성을 위해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있는 권한과 또 그것을 알게끔 학교가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명성이 중요하죠.

 

     투명하게 운영하면 누가 비리를 저지르게 되면 당장 알게 됩니다. 



33. 검찰총장 아들의 시험부정으로 인한 2년 정학사건 

     방총장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네. 물론 압니다.

     그 아이가 누구의 아들인데 2년동안 정학을 시켜? 당장 복귀시켜라.

     못 합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내가 네 부정을 다 알고 있는데..


     제가 전화에다 대고 이 나쁜 놈아, 어디다 대고 공갈이냐?

     엄청나게 야단을 치고 전화를 내던졌다고.

     그 다음에 한 마디를 못하더라고.

     그렇기 때문에 부정이 있으면 공갈, 협박의 대상이 됩니다.

   

    

35. 나데즈나 니코라에브나 / 전 카자흐스탄 정부 법률 고문

     방찬영 총장님은 영웅입니다.

     그분이 지금까지 한 일은 영웅적이고 헌신적인 일입니다. 

     방총장님이 카자흐스탄을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해보면 마땅히 새로운 카자흐스탄을

     만든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8천명이 넘는 키맵의 졸업생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바로 방총장님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1. 이우민 2017.04.25 11:31

    다른 블로그에도 코멘트 했듯이 여기서도 코멘트 남깁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보건의료법윤리를 전공했고 졸업한 이우민 입니다. 2014년 당시 현재 한국에서 병원4개 운영하고 계시는 분의 소개로 키맵대학교 정규과정 MBA 공부하러 갔었지만 두달만에 귀국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글로 인해 다른 사람이 오해할까봐 이런글을 남깁니다. 저같은 피해자를 없애자는 심정에서요. 제 연락처도 남기니 지금부터 말씀드리는것은 거짓이 없다는점을 밝혀드립니다.(010-4772-4232) 교환학생은 몰라도 정규학생으로 한다면 그 실상은 좀 다르다고 할수있습니다. 학생에 따라 차별 엄청하고 심지어 저는 사람 취급도 못받았고요. 그 예로 실제 있었던 일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3가지 정도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시 키맵대학교에 가기전 대학원에서 졸업시험 떨어지고 아는분 소개로 갔었는데(키맵대학교에서도 졸업시험 치를수 있다고 하신걸보면 학교간 자매결연 그런걸 생각하신듯함 이정도 일을 추진하는 힘은 있으신분임 또한 저도 그분을 따르고 있었음) 룸메이트가 저보다 10살 어린 김현진 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워낙 꼴통이었는지 수능시험을 못봐서 한국에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어서 LG화학 연구소 연구원에서 일하는 자기 아버지 빽으로 왔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출국하는 비행기도 같이 탓고 입국 날짜도 동일 했고요. 그런데 이 김현진 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먹은거 치우질 않는다던가 나름 손빨래 한답시고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들어서 방바닥 에까지 물이 새어나가게 한다던지 등등등 도저히 같이 살기엔 눈뜨고 못봐줄 지경에서 그때마다 말을해도(욕 절대 않했고 부드럽게 말했음) 대부분의 반응이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씨1발1놈1아" 등 대기업 다니는 사람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패기가 너무 심하게 넘치더라고요. 자기가 했던 실수는 절대 인정 안하고요 마치 박근혜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저에게 아주 공손하게 인사 꼬박꼬박하고 그러는데 주위에 사람이 없다 싶으면 태도가 180도 변해서 저런식으로 나오고요. 그래서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은 상황에서 한인 학생회장(당시 조경민)에게 쪼르르 가서 말하기에도 상황이 좀 커질거같고 그래서 김쟈넷이라는 총장실에 일하는 총장비서인지 매니저인지 에게로 갔습니다. 이유는 한국말을 할줄 알고 한인학생들 고충도 해결해주는 역할도 하는거 같더군요. 다른 사무실에 가보았자 카자흐스탄인이라 말도 안통하고 그 사람들 영어도 잘 못하고요. 또 이런일 말해봤자 한인들끼리 침b기 인거 같아서요. 그래서 이런저런 사정설명을 하고 룸메이트좀 바꿔달라고 했는데 한다는 말이 "아~~~그러시구나~~~ 그래서요? 어쩌라고요?" 라고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더라고요. 이 일 외에도 다른일 때문에 꼭 찾아가야 하는 일이 몇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제가 무슨말을해도 저런 말투 저런 반응이었고요. 심지어 나중에 당시 학생회장에게 가서 말해도 뭐 듣는척만하다가 그냥 말아 버리고 그러더라고요. 아마도 저희 부모님은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시장때기라 천하게 보고 저기 김현진의 아버지는 LG화학에서 일하는 한국사회에서 상위 5% 엘리트라(키맵대학 대학원 졸업생이면서 현재 LG에서 일하는 김민석 씨의 말에 따름. 직책도 2014년 당시 분명히 자기가 LG 그룹에서 자기 직책이 CFO 라고 했음. 이 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음.) 사람 차별한것일수도 있겠지요.저희 가족은 사회적으로 힘이없고 약자니까요. 그리고 비록 소개를 받았지만 소개해주신분은 제 부모님이 아니니까요. 두번째로 영어인데 그 김현진 이라는 사람하고 같은날 입국해서 같은날 영어시험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김현진 같은 경우 2~3일만에 나온반면(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김현진의 경우 영어를 너무 못해서 영어 기초수업 수강시작했음. 같은 룸메이트고 그래서 제가 입국후 여러가지로 도와주고 그랬고요. 왜냐면 김현진은 영어를 너무 못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죠...러시아어도 못하고...바로 입국했기 때문에 친한 한인 학생도 없고...)그런데 저의 결과는 2주가 지나가는 데도 통보가 없고 말해도 기다리라고만 하고...시간은 지나가고 허비가 되고 그래서 그 총장비서 김쟈넷에게 가서 말했는데 그 다음날 바로 영어수업을 들으러 오라더군요. 등록하라고요. 정규수업은 아니고 키맵대학교 학생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비정규 영어 강좌이고 그래서 돈을 또 내야했고요. 그런데 이게 참 너무 웃긴게 제 영어실력 만큼은 김쟈넷이라는 사람조차 저보고 영어공부 할 필요 없는것 같다고 말할정도 였고 실제로 저는 현대 IBT에서 개발한 신물질 비타브리드C 관련해서 홍콩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에서 홍콩인이 아닌 외국사람들에게 영어로 제품 소개하는등 영어 실력만큼은 당시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서 솔직히 카자흐스탄에서 영어 수업같은거 들을 필요가 하등 없었고 영어시험도 분명 통과 했는데 그 이후 행정처리가 늦어진 부분에 대해서 한마디의 사과도 듣지도 못한채 영어수업을 들으라하니 자기네들이 한 실수를 덮을려는 생각을 지울수 없더군요. 더 웃긴건 저보고도 나중에 정규 영어 기초수업을 들으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레벨은 제일 높지만 영어 기초수업은 영어 기초수업 이기 때문에 제 영어실력은 끝까지 인정 못해주겠다는 거나 아니면 행정상 실수를 그냥 덮을려고 그랬는지 모르죠. 그냥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되었다. 정말 우리의 실수다 미안하다 등 그냥 사과하면 될것을 저렇게 일을 크게 만들더라고요. 당연히 저에게는 상당한 모욕이었고요.(영어 관련해서) 세번째로 아까 잠시 언급한 자기가 LG그룹에서 직책이 CFO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김민석 씨에 대해서 말해드리자면 이 사람이 키맵대학교 대학원 졸업생인데 하루는 무슨 후배들과 식사를 하고 싶다고 모였으면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식사자리가 학교엔 분명 통보된것으로 알고 있고 김쟈넷도 알고 있다는걸 저는 알고 있었죠. 왜냐면 제가 둘이 사무실에 같이 있으면서 대화하는걸 지나가면서 창문을 통해서 봤거든요 그것도 공지 오기전에. 어쨋든 공지에 따라서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다른 학생들과 기다리는데 이게 왠걸? 김현진 도 오더니만 김민석씨 옆자리에 떡하니 앉더니 김민석씨가 어깨동무를 하데요? 그러면서 제 앞에서 하는말이 자기가 LG그룹에서 CFO 라는 직위에 위치해 있고 자기가 찍은 도장에 의해서 수억원이 왔다갔다 한다나 어쩐다나 뭐 LG화학에서 일할정도면 한국에서 상위5%안에 드는 사람이라나? 자기는 운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되었는데 그래서 저보고도 운이 너~~~~~~~무 좋길 바란다나? 김민석이라는 사람이 이런말 저런말 할때마다 김현진이라는 아이는 옆에서 마치 니까짓게 쯔쯔 이러는 듯한 웃음. 마치 박근혜가 노무현 전 대통령님 탄핵시키려할때의 웃음을 저에게 짓더라고요. 둘이서 그렇게 아주 쌩쑈를 하는데 이건 뭐 한마디로 알아서 기어라 라는 뜻이겠죠. 더 심각한건 이게 학교에도 미리 통보가 된점. 참....LG화학에 얼마나 잘보일려고 하길래 이렇게 다른사람을 사람취급 안하면서 이럴까 싶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정유라 사건을 보면 알수 있듯이 차별은 어디서나 있고 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 보다 더욱 부패한 나라니 그럴수 있다지만 저 멀리 카자흐스탄에서 까지 같은 한국인끼리 이러는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당연히 학점이나 이런거에도 공정할리가 없겠지요? 저도 연세대 대학원 다니고 의료법윤리 연구소 연구원으로도 일해봤지만 키맵대학교에서 만큼의 차별과 인간적 모욕은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기에 정말 당황스럽고 분노 할수밖에 없었죠.

  2. 이우민 2017.04.25 11:32

    더하여 말씀드리자면 방찬영 총장님을 귀국하기전 일주일에 걸쳐서 정말 마지막으로 처음 뵈었을때와 같이 인사드리고 귀국하려고 했거나 혹은 제가 그동안 겪었던 부당한 일들을 말씀드리려고 노력했지만(왜냐면 제 이야기가 도저히 먹히지도 않고 김쟈넷이라는 사람은 제가 무슨말만 하면 무시하거나 비웃기 바뻤으니까요.) 전혀 얼굴 코빼기도 못뵈었죠. 김쟈넷이라는 사람은 제가 갈때마다 총장님은 바쁘다고 혹은 지금은 안계시다고만 하고 언제 뵐수 있다고 물어보면 자기는 모른다고 하고 그랬죠. (총장비서인데 총장의 스케쥴을 모른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만요. 그리고 총장인데 너까짓것을 만나주겠느냐 라고 하면 반박할수없습니다만...어쨋든요 저는 귀국전 단 한번도 얼굴을 뵈어서 인사드릴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기까지가 제가 그곳에서 겪은 부당하다면 부당했던 일이고 LG화학에서 일하지 않는 저희 부모님같은 그냥 서민 부모님이 있는 사람이 그곳에 가면 겪을수도 있는 일이었고요. 교육의 질이나 학교 명성들 다른 퀄리티를 생각해보자면 2017년 현재 카자흐스탄 경제가 국제유가의 추락으로 엉망이 되어서 후진국인 태국 이하수준으로 떨어진것으로 아는데 다른곳도 아닌 저런 후진국에서 단순히 메스컴에 나왔고 한국인이 운영한다고해서 카자흐스탄에 까지 가는 그런 도박을 하는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미국 영국 이런데 가도 도피유학이다 뭐다 말이 많은데 말이죠. 아마도 보통사람들은 머리에 얼마나 든게 없으면 저런곳에서 영어를 배워가면서 공부하러 갈까 생각이 들겠지요. 물론 중앙아시아에 대해 관심있다고 하면 할말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겠지요. 중앙아시아 에서나 최고지 세계에서 알아주는것도 아니고 학생들에게 그다지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교육의 질도 따지고 보면 당장 한국에도 더 좋은 대학이 많은것이 사실이고 만약 그것이 아니더라도 공부를 한다는건 학교 교육의 질도 중요하고 인맥 쌓는것도 또한 무시 할 수 없겠지만 결국 그 사람이 얼마나 생각 또 생각하고 노력하는가가 정말 중요하고 더 나아가 거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올릴수 있느냐가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큰 관건이니까요. 어쨋든 카자흐스탄 키맵대학교는 알려진대로의 그런 대학이 아니라는점 알려드립니다. 사람들이 글 올리신거보고 인생의 판단을 잘못하실까봐 코멘트 달았습니다.

  3.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7.04.25 12:29 신고

    저는 타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그것을 토대로(다른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로) 작성한 것입니다.

    이우민님의 경우, 아주 좋지않은 상황에 맞딱뜨렸네요. 유가하락으로 인한 카지흐스탄의 경기가 않좋은게 먼저 있고, 함께 가게 된 룸메이트라는 사람에게서도 정말 나쁜 사례만 보고 오시게 되었구요.

    제가 뭐라 드릴 말이 없군요.


    그렇지만 방찬영 총장이 홀로 카자흐스탄에서 이룬 것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지 않을까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보란듯이 성공한 기업가. 라이트하우스. 그 이전에 어릴적 가족관계의 슬픔을 간직한 소녀였던 그녀는 그러한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큰 자기승리를 일구어 내었다.
미국에 와서도 결혼에 실패했지만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태권도를 통한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6남3녀의 자녀를 입양하고 실리콘밸리에서 라이트하우스라는 첨단 클린룸을 만드는 회사로 업계1위를 지키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대저택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한달에 한두번 파티를 열면서 가족의 유대를 강화한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고국이 생각날 때에는 김치와 불고기, 떡볶이등의 한국음식을 직접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즐긴다. 한국에서 제대로 못다한 가족사랑을 미국에서 입양한 많은 자녀들과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에대하는 그녀의 자세가 인상적이었는데, 한 번도 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고자하는 일에 대한 열의가 엄청났으며 70을 바라보는 지금도 출근하는 매일 아침의 시간이 두근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채워진다고 했다.

회사는 그의 생각과 열정, 밝은면모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었다. 다큐에서 보여진 여러곳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들은 '동기부여의 한 전형' 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였다. 그녀의 회사본관은 물론이고, 다른나라에 있는 지사와 고객사와의 모임을 가지는 자리에도 언제나 최선을 대해 임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이는 반짝이는 장식이 있는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 헤어스타일등..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도 그녀의 열정을 충분히 느낄수 있게 된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내가 가진 달란트가 무엇인지 잘 고찰해보고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할 노력을 경주해야 겠다.


  1.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2.09.28 07:41 신고

    이 분 교회 다니시다 보다. 그러고 보니 다큐(KBS스페셜)에서 보여지던 모습이 구김살이 없어보이는 모습들이 교회적 이미지와 오버랩되는 듯 싶다. 다음 링크는 기독일보라는 곳에 올라온 기사.. http://ny.christianitydaily.com/view.htm?code=mw&id=7464

그가 드디어 입장을 밝혔다.




출마발표장인 서대문구 구세군 아트센터에서 안철수.  (출처: 중앙일보 기사)











[ 출마발표 동영상 ]








[ 출마발표 전문 ]



▲안녕하십니까

안철수입니다.

저는 지난 7월말에 말씀 드린 대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그동안 제 답을 기다려오신 여러 분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기업인과 교수의 삶을 살아온 저로서는,

국가경영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춘천에서 만난 어르신, 명예퇴직을 앞둔 중년의 가장,

30대의 쌍둥이 엄마와 같은 많은 이웃들을 만나 뵈었고,

각 분야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가진 분들도 만났습니다.

가능하면 조용하게 경청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느 한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도

그분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제게는 스승입니다.

그 분들이 저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한결 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또 한 번도 정치에 발 딛지 않은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많은 분들이 왜 제게 지지를 보내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좀 정치를 다르게 해보자, 새롭게 출발해보자"는 뜻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역량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가의 리더라는 자리는 절대 한 개인이 영광으로 탐할 자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당선여부보다는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저는 먼저 정치개혁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5년도

분열과 증오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 결과를 존중하고 같이 축하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께 제안합니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증인으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할 것을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선거후에도 승리한 사람은 다른 후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패배한 사람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같이 약속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당선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정책 대결 속에서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또 경청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 경험도 없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정치라는 험한 곳에 들어가 괜히 만신창이가 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

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빚진 게 없는 대신,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5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현명한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각자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계층 간의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앞으로 5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국내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까지 겹쳐 한꺼번에

위기적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제가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하고 실수도 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그래도 최소한 물줄기는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경제 중심 경제가 들어섭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체제는 역시 안보와 균형을 맞출 때 실현가능합니다.

제 정책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 과정부터

국민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첫걸음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의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은 두렵지 않습니다. 극복하겠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입니다.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리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여러분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릴 적 그의 모습 (부산 진구 범천동)  출처:중앙일보 기사










[ 연관기사 ]


  *아이엠피터: (2012.09.20)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에 담긴 충격적인 사실

  *장지영의 샤우트: (2012.09.20)  안철수 캠프, 선거 총괄하는 박선숙에 주목해야 한다. 







미얀마에서 실시된 4월1일 보권선거에서 승리한 아웅산 수치여사의 승리.

군부독재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얀마에 봄이 찾아올 거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

그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의 선전.


관련기사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628/7776628.html?ctg=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159/7776159.html?ctg=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저녁 7시에 tvN을 통해 문국현대표가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하였다.
아래링크는 다음팟에 올려진 동영상.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다음팟에 올려진 것



■ 문국현 대표에 대해서..  ▶바로가기. 위키백과에 나온 문국현대표 



그가 말하는 경제의 실현이 오면 정말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난관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7년에 어려움을 무릎쓰고 대선에 출마였고, 이어서 이재오를 꺽고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정말 황당한 사건으로 자리를 잃게 되는데...
 그 일로 인해 2년가까이 쉬시면서 미국에도 다녀오시고 다시 경제계로 돌아와 일을 하고 계시는데 사모님에게 빼앗긴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고 하신다.

 내가 아는 CEO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 분들 중에서도 특히 열려있으시고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시며 평생학습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그것을 기업에 접목하여 유한킴벌리를 지금의 반열에 올려 놓으신 분이다.

 마지막 부분에 청년들의 영상질문을 받으시며, 우리나라가 코스피 3000을 넘어야 하며 벌써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그것을 막고 있는 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한 30대 직장인에게 자신의 배움도 중요하고 가정과 함께 기반을 마련해햐 한다고 하시면서 두 권을 소개해 주신다.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 피터 드러커의 책이라고 경영자의 길.. 이라 하셨는데, 제목이 안보여 다른 책을 하나 넣는다.





관련기사
*출처: 포스코신문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포스코청암상 수상자 선정
과학상 천진우 교수, 교육상 곽종문 교장, 봉사상 소말리 맘 대표

정준양 회장 재단이사장 선임


포스코청암재단은 2월 2일 이사회를 열어 정준양 회장을 재단이사장으로 선임하고 2012년 포스코청암상 수상자로 천진우 연세대학교 화학과 교수(청암과학상), 곽종문 한겨레중고등학교 교장(청암교육상), 캄보디아 소말리 맘 소말리맘재단 대표(청암봉사상)를 선정했다.

천진우 교수

 


곽종문 교장

 

소말리 맘 대표

 

이어 임기가 만료된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과 이채욱 인천국제공항 사장, 김병현 포스텍 교수를 이사로 재선임하고 박성빈 트랜스링크캐피탈 대표를 신임이사에,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을 신임감사에 각각 선임했다.

정준양 회장은 이날  “출범 7년을 맞아 포스코청암재단의 핵심사업이 체계적으로 정착되어 포스코와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고 있다”며 “명예회장님의 숭고한 국가관과 애국심, 인재육성 철학을 이어받아 재단이 한층 더 발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청암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천진우 교수는 나노과학과 의학을 접목한 나노의학(nano-medicine)이라는 융합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개척하고 정립한 나노합성화학 분야의 석학이다. 특히 지난해 개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노 온열 치료법은 향후 뇌암이나 췌장암 등을 치료하는 데 획기적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암교육상 수상자 곽종문 한겨레중고등학교장은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한 야학과 개별지도, 대안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대안학교 영산성지고등학교는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 우수학교에 선정돼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국가에 소개됐다.

 

청암봉사상 수상자 소말리 맘(Somaly Mam) 소말리맘재단 대표는 캄보디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6세 때 자신이 겪은 인신매매의 아픈 과거를 딛고 고통받는 여성을 위한 구조활동을 펼치는 여성인권 운동가다. 그는 1996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아페십(AFESIP)이란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해 피해 여성에게 재봉 및 미용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교육을 체계적으로 펼치고 있다.

 

포스코청암상은 포스코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념하고 포스코 창업이념인 창의, 인재육성, 희생·봉사 정신을 널리 확산하고자 2006년 제정됐다.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은 3월 28일 포스코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부문별 수상자에게 상금 2억 원을 수여한다.

 

윤승규 ysk1212@posco.com

<자료=포스코청암재단>










 참 좋은 기업에서 뽑은 훌륭한 분들이다.
 특히 교육계에서 큰 일을 하신 곽종문교장이라는 분이 더욱 눈길을 끈다.
 2012년 올 해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르게 되는 해라 그런지, 더욱 사회분위기가 과열되고 혼탁해지는 양상을 띄게 되는데 이런 분들의 소식을 듣게 되면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밝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 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성:B] '지식인의 서재' -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인터뷰 영상
 



행성:B의 신간 '지식인의 서재'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의 인터뷰 영상


지식인의 서재 - 10점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행성B잎새











참고로 서울시장 인터뷰.
오늘 아침(11/17.목) 페이스북의 친구에게서 보게된 영상.



많은 기대를 하게 하는 아주 훌륭한 모습니다.




*2011.7/18(월) ~ 관심있는 이들의 관련기사를 모아보고 정리해보자. 개인적인 관심사로..

  이건 내가 어떤 성향을 띠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주도적으로 어떤 것을 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기에 이러한 대표성을 띌 수 있는 사람들을 설정하고 그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SUPPORT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리라.





*110909 일부수정.

 < PLAN PROCEDURE >

1. 이미지 검색, 찾기
2. 여러사람의 이미지를 모으기 (PPT -> 이미지저장)
3. UPDATE



*관련책 정보: 조국-오연호.  진보집권플랜
진보집권플랜 - 10점
조국.오연호 

















■. 박원순

 


박원순  사회기관단체인, 변호사
출생 1956년 3월 26일 (경남 창녕)
학력 단국대학교 사학 학사
수상 2009년 제 15회 불교인권상
       2006년 필리핀 막사이시이상 공공봉사 부문
사이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2011.10.7(금)  꼭 서울시장 되세요.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타고 대한민국이 정말 국민을 위하는, 그리고 국민도 깨어서 스스로를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되었으면 한다. 



 


 



■ . 조정래

 

조정래 교수, 소설가

출생 1943년 8월 17일 (전남 순천)
소속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가족 배우자 김초혜
학력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사이트 http://www.jojungrae.com





2011.7.18(월) 그저께 토요일 오전에 영화(써니)를 보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문득 도서관에 가고 싶어졌었다. 최근에 가질 못했는데, 가보자 싶어 갔다.  들어갈 때 저자나 책 제목등을 생각해서 검색해 보고 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왜 그랬는지 조정래 작가의 책을 보고 싶어졌다.

 그게 영화 써니를 보고 나오면서의 느낌들과 무관하지는 않다.  
 이 영화 써니는 현재 올해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데, 80년대의 추억과 즐거운 그때의 음악들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중년층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었었다. 물론 그 점에 동의를 안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은 것이 왜 그럴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당시(80년대)의 모습들이 여러가지 나오게 되는데,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웃음을 주지만, 그 현실이라는 것이 광주항쟁을 비롯한 당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학생들과 경찰들과의 대치, 다툼, 최루탄등.. 과 고등학교내의 폭력서클같은 주인공들의 행적이 결론적으로 웃음을 줄수많은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생각난 것이 조정래 작가였다. 그래서 그의 책을 여러권 도서관 책꽂이에서 빼 가지고 옆에 있던 테이블에 앉아 보기 시작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물론 태백산맥(10권_6.25전후), 아리랑(12권_일제강점기), 한강(10권_1959년이후 현대사 30년) 이라는 3세트의 대하소설이다. 그 책들중 한 권씩과 황홀한 글감옥 이라는 책이 보여 함께 조금 보았다. 이 책은 젊은 대학생들이 그에게 하는 질문을 모으고 추려서 엮어낸 책이다. 그의 자서전격인 책이라 볼 수 있는 것이 관심이 많이 갔고,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이다.


 그의 대하소설들은 솔직히 읽어보지 못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해서인지 그의 자서전 격인 이 책에 관심이 많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왜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부인인 시인 김초혜씨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가 소상하게 나오는 것등 인간 조정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 문국현

문국현  정당인, 전 국회의원

출생 1949년 1월 12일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수상 2006년 제19회 경영자대상
       2005년 대한민국 금탑산업훈장
경력 2008.05 ~ 2009.10 제 18대 창조한국당 국회의원
       2007.10 ~ 2009.10 창조한국당 대표
사이트 문함대, 페이스북, 페이스북페이지

 
 
    
2007년에 대선후보로 나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인식이 되었겠는데, 그보다 먼저 난 그의 기업가로서 너무나 멋진 모습을 보았다. 유한킴벌리라는 회사는 미국계 킴벌리 클락고 한국의 유한양행이 합작해 만든 회사인데, 초창기에는 노사분규도 심했고 P&G 라는 거대 경쟁업체에 밀려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그가 경영자로 있으면서 P&G를 뛰어 넘음은 물론이고, 노사분규도 마무리짓고 엄청난 수준의 회사로 궤도를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다. 그래서 킴벌리클락의 북아시아지역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던 중 대한민국의 어려움을 타계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정계에 발을 들어 놓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들을 만나면서 정치의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치만 그가 뿌려놓은(?) 발자취를 거울삼아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대선과 총선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고대한다.



2011.7.13  뉴스쉐어 1주년특집.  (주)뉴 패러다임인스티튜드 문국현 대표를 만나다.     ( 바로가기:   문함대 스크랩글   /  뉴스쉐어 본문 )







2011.7.28(목)  문함대에서.  sbscnbc '돈보다 사람' 택한 한국의 CEO들 (2011.3.31)
     : 워렌버핏,  코카콜라의 고이주에타,  서두칠사장,   문국현대표,    LG생활건강 차용석대표


2011.10.13(목) 창조한국당.  문국현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대표 최근근황
얼마전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현정부에서 뼈아픈 시련을 겪었던 그가 이야기하는 최근근황과 방향등.














■. 안철수

안철수  기업인, 교수

출생 1962년 2월 26일 (부산)
소속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원장), 안철수연구소(이사회의장, CLO), 노리스타운스튜디오 (의장)
가족 아버지 안영모, 배우자 김미경
수상 2011년 대전광역시 명예시민패
경력 2011.06 ~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말이 필요없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칭송받는 멘토로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
한 가지 분야가 아닌 자신의 전공을 뛰어넘어 기업가로, 교수로 멋진 삶의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2011.9.22 국민일보   안철수씨 부친 안영모 원장 부산 범천의원 48년 이야기

 

안철수교수의 아버지에 대한 기사가 나와서 읽어 보았는데,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부산의 외진 곳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50년 가까이 운영하고 계신데, 그곳에 병원을 연 이유가 "병원이 없어서", 간판 안 바꾼 이유는 "그게 별로 안 중요해서", 점심 때 환자받는 이유는 "배가 안 고파서." 늘 이런 식이다.  (출처는 안철수 페이스북 페이지)





















■. 홍정욱 

홍정욱  국회의원, 정당인

출생 1970년 3월 14일
나이 42세 (만41세)
성별 남성
별자리 물고기자리
소속 한나라당 (국회의원),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가족 아버지 남궁원
사이트 공식사이트, 트위터, 미니홈피


정치인, 국회의원중에 한국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는 정치계에서도 그런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전혀 그런 인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너무나 많은 실망을 일반국민들이 많이 받았기 때문에..
















■. 권영민(에드워드권) 



에드워드 권
(Edward Kwon  권영민)  요리연구가

출생 1971년 2월 10일
학력 영동전문대학 호텔조리학과
경력 2007.~2009 버즈 알 아랍 호텔 수석총괄주방장
       2009.10 열린 서울시글로벌 홍보대사
사이트 공식사이트, 미투데이, 블로그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아랍 버즈 알 아랍호텔의 수석총괄주방장을 한 입지전적의 인물













■. 권율(Yul Kwon)



권율(Kwon Yul) 변호사, 전 외국공무원

출생  1975년 2월 14일 (미국)
신체  185cm, 70kg
학력 예일대학교로스쿨 법학 박사
수상 2006년 미국 CBS 서바이버 우승
경력  2009.10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소비자 보호 담당 부국장
        2007 CNN 객원기자 
사이트 http://www.yulkwon.net/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로 소수민족의 열세를 극복하고 훌륭하게 성공적인 삶을 이루어 가는 그의 모습이 대견하다.





2011.10.7   한겨례. 내 삶은 대나무천장 맞선 도전


  2006년 서바이버 우승자로 유명해진 한인2세 권율씨가 5일 연세대 백양관에서 진행된 특강에서 '내가 겪은 미국 사회와 정치, 그리고 나의 꿈'을 소개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연세대 리더십센터가 공동마련했다고 한다.



  1. Favicon of http://phoebescafe.net BlogIcon phoebe 2011.07.25 22:33

    저는 여기 있는 분들 다 누군지 몰라요. ㅎㅎㅎㅎㅎㅎㅎ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7.26 07:23 신고

      요리를 잘 하시니 에드워드 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갈 수도 있겠네요. 젊은요리사인데, 버즈 알 아람 이라는 아랍권의 7성급호텔에서 조리총괄을 하는 자리에 있기도 해서,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해요. TV프로에도 자주 나오고요. 그가 쓴 책도 있죠. [ 일곱개의 별을 요리하다 ] 라는 책. http://peter0317.tistory.com/83


 2011.7.11(월) 어머니 건강검진차 진해배타고 마산에 있는 삼성의료원으로 가는 중에 토요일자 신문 'j스페셜'에 난 '여자의 품격'이라는 책을 쓴 반도 마리코 일본 쇼와여대 총장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전혜성 박사가 생각나서 책(yes24) 잠깐 보다가 검색해서 하나씩 올려보고자 한다.

 이 분의 자녀 6명 모두가 박사학위를 최소한 1개이상 가지고 있고, 그녀와 또한 그녀의 남편이 고 고광림씨 또한 박사학위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서도 이 가족이 교육에 대한 연구대상 가족이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이미지출처: 다음검색]










**가치있게 나이 드는 법: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 (2010.9.10)  중앙북스.  10,800원



 





관련링크
   *2011.6.13  취업뽀개기  [스크랩글]   간다는 대학이 고작 서울대냐?
    *

 

  1.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7.11 09:28 신고

    to be continued..



2005년 6월 12일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
스티브 잡스. 애플 CEO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그의 연설도 의미심장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대학중의 하나인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졸업식 축사를 드리게 되어 무척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 졸업을 해보질 못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학졸업식”근처에는 이번이 가장 가까이 와본 경험이 되는군요. 오늘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얻은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거죠, 대단한 건 아니구요. 딱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닷컴비즈니스와 관계된 이야깁니다.

저는 리드대학을 6개월간 다니다 자퇴를 했습니다. 하지만 자퇴하고도 18개월간은 계속 학교에 남아있었죠. 왜 제가 자퇴 했냐구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태어난 시절로 거슬러 가야 겠군요. 저를 낳아주신 생모는 젊은 미혼모로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입양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생모는 제가 꼭 대학교를 졸업한 양부모에게 입양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입양기관에서 그렇게 준비를 했고 저는 결국 변호사부부에게 입양되도록 정해졌습니다. 문제는 그 변호사 부부가 저의 입양결정 직전에 꼭 여자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거죠. 마침 지금의 저의 양부모님이신 분들이 그 대기열의 다음번째 였고 그분들은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남자아이 한명에게 양부모를 찾아주어야 하는데 혹시 입양의사가 있으신지요?” 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고 그분들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답니다. 나중에 저의 생모가 저를 입양하게 된 양부모 중에 양어머니는 고등학교만 졸업하신 분이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입양동의서에 허락을 하지 않았답니다. 결국 몇 달 후 저의 양부모님들은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생모에게 약속을 했답니다.

저는 17세가 되어 대학에 정말 갔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저는 스탠포드 대학 못지않게 등록금이 비싼 대학에 입학했고 농동자 계층이셨던 저의 양부모는 저의 학비로 그간 저축해 오셨던 돈들을 써야만 했습니다. 6개월 후에 저는 이런 상황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양부모님께서 평생동안 모은 돈을 저의 학비로 쓰는 동안에도 저는 제가 뭘 해야 하는지 대학을 다니는 것이 얼마나 제게 도움이 될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결과적으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상당히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내린 결정 중에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결정을 내리자마자 흥미가 없던 학업 준비에서 벗어나서 제가 관심있는 분야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에겐 대학생활이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았습니다. 저는 기숙사를 쓰지 못해서 친구집의 마룻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저는 하나에 5센트 하는 빈 콜라병을 모아서 음식을 사먹고 일요일이면 공짜로 저녁을 주는 헤어크리스나 기도원에 가려고 기꺼이 7마일을 걷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저의 흥미와 직관을 따랐던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정말로 값지게 쓰였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죠.

그당시 리드대학에선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서법강의를 제공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포스터나 서랍 위의 라벨에 멋지게 손으로 쓴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자퇴생이었기 때문에 전공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서법강의를 청강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그 강의를 통해 “세리프체”, “산세리프체”에 대하여 배웠고 다양한 글자체의 조합에 대하여 배웠고 어떻게 하면 뛰어난 서체를 더욱 뛰어나게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과학적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예술적적인 미묘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반해버렸습니다.

이때 배운 것들이 실제적으로 저의 인생에서 쓰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우리가 첫 매킨토시를 설계할 때 갑자기 그 당시에 배웠던 것들을 적용할 기회가 왔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맥에 모두 담았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서체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최초의 컴퓨터 입니다. 제가 그 당시에 그 강의를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매킨토시에는 다양한 서체시스템이나 비례크기의 폰트들이 설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윈도우가 맥을 따라 했지만 어떤 개인용컴퓨터에도 없던 것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자퇴를 하지 않았다면 그 서체강의를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러한 멋진 서체들은 설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닷컴비지니스를 예견할 수는 없었겠지만 10년이 지나서 다시 되돌아보면 정말 명료한 선택 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도 앞날을 예측만 한다고 닷컴비지니스에 종사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직 과거를 통해서만 미래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닷컴비지니스에 관계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용기든 운명이든, 카르마든 뭐라 불리던간에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저는 절대로 좌절하지 않았고 항상 저의 인생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저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손실에 관해서 입니다.

제가 행운아인가요? 저는 제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을 빨리 찾았습니다. 저는 20세 때 워즈와 함께 저의 부모님의 창고에서 애플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린 열심히 일했고 두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매출 2억불에 직원수 4,000명이 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우리의 첫번째 작품인 매킨토시를 1년 빨리 출시하였고 그때 나이가 30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되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자기가 해고될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애플이 커감에 따라 저는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고용하여 저와 함께 경영을 하도록 하였고 첫해에는 그럭저럭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전은 나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이사진은 그의 편이 되었고 30세의 나이에 저는 애플을 나왔습니다. 아주 공개적인 해고였습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 성인이 되면서 몰입하던 오직 한가지가 사라져 버렸고 이것은 모든 것을 부셔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전 세대로부터 받아온 기업가정신을 제가 망가뜨린 듯 한, 마치 이어달리기 경주에서 제가 받은 바통을 떨어뜨려 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제가 망쳐버린 것들에 대하여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공개적인 실패작이었으며 심지어는 실리콘벨리를 떠나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제 안에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들을 사랑했었습니다. 애플사에서 당했던 여러 일들이 저에게 하나의 변화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내몰렸지만 저는 여전히 제 일을 사랑했고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되었던 경험은 저에게는 최고의 경험이라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금 새로 시작하는 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으며 모든 것에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저를 제 생애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진입할 수 있게끔 저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5년간 저는 넥스트 라는 이름의 회사와 픽사 라는 이름의 회사를 시작하였고 놀라운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으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여러 대단한 일들이 진행되는 와중에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기술은 현재 중흥기를 맞고 있는 애플의 핵심 기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랜과 저는 사랑스러운 가족을 이루었구요.

저는 확신하건데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저에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은 마치 지독히도 쓴 맛의 약과 같으나 분명 환자를 낳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인생에 있어 머리를 벽돌로 얻어맞는 듯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는 그 당시 저를 지탱하게 해 주었던 힘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듯 여러분의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의 일들은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이 진실로 만족하는 방법은 여러분이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세요. 쉽게 정하진 마세요.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일들처럼 여러분이 그런 일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좋은 친구사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아보세요. 쉽게 정하진 마시구요.


저의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17살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만일 네가 하루 하루를 너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 너는 옳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지난 33년간 이 문구는 저의 마음속에 좌우명처럼 남았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며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만일 오늘이 나의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정말 할까?” 그러면 대부분의 날들의 대답은 “아니” 였습니다. 저는 뭔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는 일이 저에게는 큰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자극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일에서, 외부의 기대나 자존심, 당혹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 – 이러한 것들은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만을 남겨놓기 때문이죠. 당신이 곧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 하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당신은 알몸입니다.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을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약 일년전에 저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CT촬영을 했고 판독사진은 선명하게 저의 췌장에서 종양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었습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고 하였으며 제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정도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사가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벌려 논 일들을 정리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의사들의 표현 이었습니다. 그것은 돌아가 아이들에게 십년 간 해줄 이야기들을 몇 달 만에 다 끝내라는 뜻이었으며 모든 것을 잘 정리해서 가족들이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끔 하라는 것이었으며 작별인사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하루종일 내가 암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에 생체검사를 했는데 의사들이 가는 관을 저의 식도로 집어넣어 위를 지나 창자쪽으로 해서 저의 췌장에 바늘을 삽입하여 종양으로부터 조직을 일부 채취 하였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으나 그 당시 함께 있던 저의 처는 의사들이 현미경을 통해 그 조직을 관찰하더니 그 조직이 외과적인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희귀한 형태의 췌장암임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완치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장 가까이 죽음과 직면했던 경험이며 앞으로도 몇십년간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일속에서 살아나고 나서 저는 좀더 확실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 조차도 죽어서 가려고는 하지 않지요. 그러나 역시 죽음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만 하는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곳이죠. 그리고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새로운 삶이 창조되기 때문에 그래야만 합니다. 죽음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대리인 입니다. 오래된 것을 새것으로 깨끗하게 바꾸어 주지요. 지금 당장 여러분들은 가장 새로운 존재 이지만 언젠가 머지않아 여러분들도 늙어갈 것이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드라마틱 한가요? 하지만 사실이죠.

여러분들의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인생을 허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독단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그렇게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과에만 의존하며 사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소리에 묻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못 들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이미 여러분들이 진정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나머지는 모두 부가적인 문제들인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The Whole Earth Catalog”이라는 대단한 책이 있었습니다. 저의 세대에서는 거의 바이블과도 같은 책이었죠. 여기서 멀지 않은 멘로파크란 곳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 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자신의 시적인 영감을 담은 책이죠. 1960년대에 쓰여진 책인데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라던가 탁상출판의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와 즉석카메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책은 마치 구글의 종이책처럼 35년전의 구글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이며 깔끔한 문체와 위대한 견해들로 충만한 책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 를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발간 하였고 그런 시기를 지나 1970년대에 최종판을 발간했는데 그때가 제가 지금의 여러분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 입니다. 최종판의 뒷장에는 새벽의 시골길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요. 만일 여러분들이 충분히 모험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한번쯤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 사진 아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배고픈 채로 지내라, 바보처럼 지내라”. 이것이 최종판을 발행하던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배고픈 채로 지내라, 바보처럼 지내라. 저는 항상 제 자신이 그러기를 바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졸업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여러분들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배고픈 채로 지내라, 바보처럼 지내라.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애플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대표이사인 스티브잡스가 2005년 6월 12일 졸업생축사 때 발표한 것입니다.)




[원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 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연설물 출처: 
http://againnagain.tistory.com/4
  1. Favicon of https://hls3790.tistory.com BlogIcon 옥이(김진옥) 2011.07.03 08:00 신고

    우와~~~~~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7.04 17:28 신고

      요즘 잡스와 애플을 빼놓고 디지탈 기기를 논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2.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11.07.04 03:16 신고

    실제로 그를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큰 영광일텐데...
    아무쪼록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7.04 17:30 신고

      지금 건강이 많이 안좋아졌지만, 그의 명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디지탈 기기시장을 새롭게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이 더욱 의미를 갖는가 봅니다.

  3.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7.06 14:29 신고

    ....제가 17살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만일 네가 하루 하루를 너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 너는 옳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지난 33년간 이 문구는 저의 마음속에 좌우명처럼 남았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며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만일 오늘이 나의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정말 할까?” 그러면 대부분의 날들의 대답은 “아니” 였습니다. 저는 뭔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4.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10.07 23:08 신고

    2011. 10.7 그의 사망후 관련기사(키워드12개포함) http://media.joinsmsn.com/article/847/6358847.html?ctg=

  5. BlogIcon mahasiswa terbaik 2011.10.23 05:14

    신사 이봐요, 거기에만 귀하의 블로그에 발견과 함께 정보의 숫자를 추구하는 월드 와이드 웹 평가로 합의했다. 우리는 당신이 blogsite에 대해 가지고있는 정보의 경외감에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왜 주제가보고 정확하게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이 기사를 예약 - 표시 더 얻으려면 다시 시작. 누구든지, 내 친구, 좋은 OLE '!

  6. Favicon of http://www.amerisleep.com/best-mattresses-for-back-pain BlogIcon Best mattress for back pain 2011.12.19 23:39

    어머니는 고등학교만 졸업하신 분이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입양동의서에 허락을 하지 않았답니다.


지난주에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나이지만 많은 노력으로 꿈을 이루는 것에 관해 얘기를 해준 김수영라는 젊지만 당당한 여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다시보기를 살펴보면서 서울대 교수이면서 학생들로부터 최고의 강의라고 찬사를 받고 있다는 교수가 있어서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가 바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인 김난도 교수였습니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www.chtvn.com/VR/inside/




■ 장미는 언젠가는 꽃이 핀다.


 대학교 교수라고 하면 좋은 학교를 나오고,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 현재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도 나름의 고민을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고 처음 대학에 갔던 학과는 자신의 적성과 의지와 너무나 맞지 않는 곳이었다고 밝히더군요.  그 학교는 서울대 법대였는데, 당시 그가 받은 성적으로 갈수 있는 대학을 대조해본 후 지원해서 갔다고 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나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성적으로 끼워 맞추기식으로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여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중요한 문제점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학과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에 사법고시는 응시도 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4학년때에 가서야 자신이 행정을 배워서 지방행정을 운영하는 '군수'의 꿈을 가지게 되면서 행정대학원을 가게 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강사를 하면서 해당학과(행정)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여러번 Apply(응시)를 했는데 떨어지게 되는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가 정말 힘들었고,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시기라고 합니다. 

 수많은 밤을 뒤척이고 자신에 대한 자괴심에 빠지기도 하고, 대학교때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던 사법고시까지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로마인이야기'를 읽었었는데, 한 대목에서 큰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 장미는 언젠가는 꽃이 핀다."

  그래, 아직 나에게는 꽃이 필 시기가 아니었을 지도 몰라. 그러면서 자신을 추스르고 희망을 고리를 찾아가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에서 소비자학과에 대한 교수를 임용한다고 공고를 보게되었고, 그것에 응시하여 지금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법학을 전공하고 행정학을 추가로 공부했는데, 마지막으로 소비자학과의 교수가 된 지금 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으로 20대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되었다고 그 반응이 과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전공학문에 소홀했던 것은 아닙니다.  '트렌드코리아' 라는 책으로 2009년부터 3년간 내면서 해당책으로 정진기 언론문화상까지 타기도 했더군요.








■ 인생시계


그의 집무실에는 인생시계라는 좀 특별한 시계가 놓여져 있습니다.


인생을 나이를 80으로 보고, 현재 자신의 나이에 하루24시간을 대비시켜 놓은 것입니다.  40세이면 낮12시가 되는 경우죠.  현재 48세라는 그는 오후 2시경이 된다는 군요. 그리고 그의 책을 읽고 많은 호응을 보내는 20대는 대개 오전9시 전후가 되는 거구요.

 많은 학생들이 상담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하소연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 선생님 지금 제가 4학년이고, 다른 친구들은 유학고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한데 저는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라며 자신의 진로와 첫 직장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데, 그는 이런 학생들에게 인생의 시계를 얘기해 주며 너의 삶은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처음을 너무나 잘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차의 1등석을 바로 타려는 것이라고 비유를 해 주셨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아직 젊기때문에 우선 기차를 먼저 승선해서 그 이후에 차츰 등급을 올려 1등석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라고 해 준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직장이 물론 중요하지만,
  " 난 너의 마지막 직장이 무엇일지 더 궁금하다. "   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상기시켜 준다고 합니다.









■ 마시멜로 TEST


 미국에서 실시한 TEST인데, 어린 아이들에게 아주 달콤한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 그것을 바로 먹지않고 15분만 견디면 두 개를 먹을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며 실험을 했답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가15년후에 아이들이 성장하여 SAT시험을 보았는데, 참았던 아이들의 성적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평균 100점가량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직장을 가지고 그들이 받게되는 연봉또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죠.

 " 지금 현재의 쾌락을 조금만 미룰 수만 있다면, 앞으로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연습을 꾸준해 해야한다. "






그리고 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지만, 책으로 그의 이야기를 만나 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를 통해서 들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20대는 항상 불안함과 불확실성이 커 보이는 시기인데, 그럴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며 시계보다는 나침반을 나침반보다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볼 줄 아는 것의 중요성을 반복해 말씀해 주십니다.



 인생을 통해서 자신의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그것이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선생님, 또는 친구들도 도움을 줄 수 있겠죠. 김난도 교수님처럼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뿐 아니라 책을 통해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는 분들을 많이 알아가고 배워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 나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쌤엔파커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내용을 확인하면서 보게된 안철수 교수의 강연 포스팅 (문화체육관광부)







 
  1. Favicon of http://phoebescafe.net BlogIcon Phoebe 2011.05.05 19:41

    저는 오후 한시쯤 되것네요. 그러고 보니 한참 점심 먹을 시간인데요. 하하하
    전 하고 싶은 패션 공부를 하긴 했는데 그게 금전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성공할수 있는 직업이라
    방황하고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직장이 젤루 편하고 좋네요. 시간 제약도 없고..ㅎㅎ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5.05 22:35 신고

      그 패션에 대한 감각이 음식에 그대로 적용되어 나오는 것 같아요.
      피비님 음식들이 특히 볼거리가 풍성하고 화려한 면이 있지요.^^

      FoodBuzz에서도 진가를 확인했던~ ㅎ

  2. Favicon of https://slds2.tistory.com BlogIcon ★입질의추억★ 2011.05.06 18:34 신고

    저도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한다면 분명 꽃 필 시기는
    온다고 믿어요.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5.06 21:02 신고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나아가는 방향에 데해서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깊이가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말입니다. ^^

  3.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2011.06.09 19:21 신고

    늦게 피는 장미도 썩 괜찮겠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6.09 23:40 신고

      생각의 방향을 잘 잡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줍니다. 단지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죠..

  4. 했는데 떨어지게 되는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가 정말 힘들었고,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시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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